무너진 뒤에 더 크게 만들었던 텐트

혼자 하고 싶지만 곁에 있어 달라는 아이, “천만 잡아 주세요”

혼자 해내고 싶어 하면서도 필요한 만큼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도움의 크기를 아이가 정하도록 기다리는 장면을 살펴봅니다.

텐트가 무너졌다.

한참 공을 들여 만들었던 것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손을 뻗으면 금방 다시 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텐트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천만 잡아 주세요.”

잠시 의아했다. 무너진 텐트를 다시 세우려면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가 부탁한 것은 그중 가장 작은 일이었다.

천을 잠시 잡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맡은 역할의 전부였다.

아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너진 구조를 살펴보고, 다시 세우고, 위치를 바꾸고, 연결했다.

대부분의 과정은 아이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도움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도움의 크기를 정한 아이

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꼭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는 혼자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천만 잡아 주세요.”

그 말은 도움을 거절하는 말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맡기는 말도 아니었다.

곁에 있어 달라는 말에 조금 더 가까웠다.

텐트는 다시 완성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성된 텐트를 다시 분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겨우 만들었는데 다시 허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조립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크게, 더 넓게, 더 단단하게.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에 보았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아이는 도움이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도움의 크기를 스스로 정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전부 대신해 주는 것은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자리도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대신 해주기보다 곁을 내어주는 부모

“내가 할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 물러나야 할지, 더 도와줘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둘 중 하나만 떠올린다.

혼자 하게 두거나, 대신 해 주거나.

혼자 하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을 때

하지만 아이들은 가끔 전혀 다른 자리를 만든다.

혼자 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곁에 있었으면 하는 자리.

도움을 받고 싶지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지는 않은 자리.

그날 아이가 부탁한 것은 텐트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천을 잡아 줄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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