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은 마음 뒤에 숨어 있는 것
도블 게임을 하던 날이었다.
아이가 카드를 뒤집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처음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카드를 한 장씩 넘기고, 같은 그림을 찾고, 가져가는 평범한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이 몇 번 이어지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담사가 먼저 그림을 발견하면 아이의 손이 더 빨라졌다.
상담사가 앞서가기 시작하면 표정이 굳어졌다.
반대로 자신이 먼저 발견하면 입가에 아주 잠깐 웃음이 스쳤다.
그날 아이는 여러 번 게임을 반복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다.
그냥 계속했다.
이기고 싶어 보였다.
사실 그 모습은 상담실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원카드를 할 때도 비슷했다.
처음 한 판은 상담사가 이겼다.
그러자 아이가 연달아 세 판을 이겼다.
상담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선생님도 연승 한번 해보자.”
그러자 아이는 카드를 정리하다가 슬쩍 말했다.
“선생님은 한 번밖에 못 이겼잖아요.”
말투는 담담했지만 표정은 달랐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이 세 번 이겼다는 자랑이 숨어 있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는 승부욕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니 승부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보였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이기는 기쁨만이 아니었다.
지는 순간의 불편함도 꽤 큰 것 같았다.
체스를 할 때였다.
체스를 둘 줄 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 아이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그리고는 슬쩍 상담사를 바라봤다.
상담사가 설명해 주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치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불편해 보였다.
어떤 날은 게임에서 지기 시작하면 다른 놀이로 넘어가거나 정리를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싫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는 순간을 오래 머무르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학교에서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친구들이 웃을까 봐 손을 들지 못하기도 한다.
숙제를 못했을 때 괜히 화부터 내기도 한다.
게임에서 지면 규칙이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고집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다른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잘하고 싶어.”
“틀리고 싶지 않아.”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아이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훨씬 편안해졌다.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할 때는 설명이 길어졌다.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서는 표정도 밝아졌다.
반대로 모르는 상황이 되면 조심스러워졌다.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순간에는 몸이 먼저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상담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체스 규칙을 다시 물어보기도 했다.
새로운 게임을 배워보기도 했다.
지고 나서도 게임을 이어가는 날이 늘어났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한 변화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이기는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경험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는 순간에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경험.
실수해도 괜찮은 경험.
모른다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경험.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도 누군가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경험.
아이들은 종종 승리를 원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실패해도 안전한 자리를 원하기도 한다.
상담실에서 반복되던 게임들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는 게임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겨도 괜찮고, 져도 괜찮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승패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