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히고 싶어서 도망치는 아이, 관계에 들어가는 속도
상담실에 들어오기 싫어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다. 관계 자체보다 가까워지는 순간의 불안이 더 큰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상담실 문 앞에 서자 아이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집에 갈 거라고도 했다.
엄마가 달래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다른 선생님이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몸을 돌려 대기실 소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처음 본다면 정말 상담을 하기 싫은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상담실에 들어오기 싫지만 떠나지도 않는 아이
아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것도 아니었다. 소파에 앉은 채 휴대폰을 꺼냈다. 게임을 켰다. 몇 초 보다가 껐다. 다시 다른 게임을 켰다. 또 껐다.
게임에 집중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았다.
무슨 게임인지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화면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금 지나자 짧게 한두 마디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말보다 놀이로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
“상담실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조심스럽게 묻자 아이는 싫다고 하지 않았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왔다.
상담실에 들어온 뒤에도 아이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었다. 길게 대답하기보다는 “응”, “아니” 정도의 짧은 말만 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습관처럼 휴대폰을 켰다.
게임을 실행했다가 금방 끄고, 다른 게임을 켰다가 다시 끄곤 했다.
마치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상담실 안에는 계속 머물렀다.
학교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비슷했다.
친한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한두 명 정도 있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학교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친구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쉬는 시간에는 혼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학교가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급식 먹는 재미로 간다고 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많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아이의 대답은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이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정말 좋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학교가 재미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강하게 바란다는 표현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필요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상담이 몇 회기쯤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늘 먼저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계가 끊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상담실에 들어오기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들어왔고, 말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가도 놀이가 시작되면 조금씩 말을 늘려갔다.
칼싸움을 할 때는 웃음이 많아졌다.
게임을 할 때는 승부욕도 보였다.
자신이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설명도 길어졌다.
도망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속도로 다가오는 과정
어쩌면 아이는 관계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불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들도 비슷한 장면을 만날 때가 있다.
학원에 가기 싫다고 한참을 버티다가 결국 가는 아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지만 저녁을 먹으라는 말에는 슬그머니 나오는 아이.
말 걸지 말라고 하면서도 부모 근처를 맴도는 아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면 밀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담실 문 앞에서 버티고 있던 그날의 아이도 그랬다.
“가기 싫어.”
라는 말은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소파에 앉아 계속 머물러 있던 모습.
끝내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던 모습.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모습.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아이는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속도로 조금씩 관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