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기록 태그, 분류보다 다시 보기 위한 질문

상담기록 태그는 장면을 하나의 진단이나 해석으로 확정하는 표지가 아닙니다. 관계·방어·정서·상담자반응을 다시 살펴보기 위한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AI 상담사례 분석을 시도하면서 긴 상담기록을 한 번에 요약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기록 정리나 사례개념화, 슈퍼비전 준비를 위해 전체 흐름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체 요약만으로는 다시 봐야 할 작은 장면들이 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기록을 조금씩 나누어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장면분할의 시작이었지만, 처음부터 “장면분할”을 중요한 구조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관계 방식이 달라지는 지점, 놀이의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 상담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지점에서 잠시 끊어보는 정도였다.

긴 기록을 한 덩어리로 보면 너무 많은 것이 사라지니, 일단 다시 볼 수 있는 단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가까웠다.

처음 태그는 분류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장면을 나누고 나서 하고 싶었던 일은 해석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한 장면을 하나의 설명으로 닫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다시 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 장면을 방어로도 볼 수 있을까.

불안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까.

우울과 관련된 장면은 아닐까.

대상관계적으로 보면 어떤 관계 방식이 보일까.

상담자반응까지 함께 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처음 태그는 이런 질문들을 장면 옆에 붙여두는 방식이었다.

“방어”라고 붙였다고 해서 그 장면을 방어로 확정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불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해서 내담자의 핵심을 불안으로 정리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태그는 결론이라기보다 표시였다.

나중에 다시 볼 때, “이 장면은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겠다”고 돌아오기 위한 흔적에 가까웠다.

태그는 여러 이론과 임상 언어가 섞여 있었다

처음 태그는 지금처럼 정리된 체계가 아니었다.

대상관계에서 익숙하게 배웠던 단어들도 있었고, 정신분석에서 익숙한 표현들도 있었다. 방어기제와 관련된 말, 이상심리학에서 배운 정서나 증상 관련 단어, 실제 상담 장면에서 떠오르는 관계적 표현도 섞여 있었다.

그래서 처음 태그를 “대상관계 태그”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대상관계적인 언어가 중심에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관점의 말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지금 보면 체계적인 태그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하나의 이론을 적용하려던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을 여러 관점으로 열어보려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담기록을 다시 읽다 보면 한 이론의 언어만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떤 장면은 방어로 보이고, 어떤 장면은 불안으로 보이고, 어떤 장면은 관계 방식으로 보인다. 또 어떤 장면은 이론보다 상담실에서 느꼈던 분위기로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태그와 장면분할을 나누어 보는 이유

처음에는 장면분할보다 태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그를 붙이다 보니 장면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면을 너무 크게 잡으면 여러 관계 방식이 한 장면 안에 섞였다.

처음에는 내담자가 상담자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중간에는 상담자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고, 마지막에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장면도 있었다. 이런 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묶어두면 태그를 붙이기가 애매해졌다.

회피라고 하자니 뒤쪽의 접근이 걸리고, 불안이라고 하자니 통제적인 부분이 남았다.

반대로 장면을 너무 작게 나누면 상담의 흐름이 끊겼다. 한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방어처럼 보이지만, 앞뒤 흐름을 함께 보면 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장면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임시 단위여야 했다.

장면분할은 단순히 기록을 자르는 일이 아니라, 여러 관점이 붙을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일이 되었다.

관점별 태그로 상담기록을 다시 보는 방법

처음에는 여러 관점이 섞여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한 장면을 방어로도 보고, 불안으로도 보고, 우울과 연결해서도 보고, 대상관계적인 관계 방식으로도 보려고 했다. 그렇게 보니 상담기록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근데 장면이 많아질수록 문제가 생겼다.

어떤 태그는 관계를 보는 말이었다.

어떤 태그는 정서를 보는 말이었다.

어떤 태그는 방어를 보는 말이었다.

어떤 태그는 내담자의 반응이 아니라 상담자반응과 관련된 말이었다.

이것들이 한데 섞여 있으면 처음에는 넓게 볼 수 있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는 어려웠다.

태그를 많이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관점에서 붙인 태그인지 나누어볼 필요가 생겼다.

관계를 보는 말은 관계를 보는 말대로, 방어를 보는 말은 방어를 보는 말대로, 내용이나 정서의 흐름은 또 그 자체로, 상담자반응은 상담자반응대로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구조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 장면을 여러 방향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이걸 방어로도 볼 수 있을까.

불안으로도 볼 수 있을까.

우울과 연결해서 볼 수는 없을까.

다른 관계 방식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 질문들이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질문들을 구분해야 했다.

상담기록 다시보기는 하나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이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장면분할과 태그는 조금씩 다음 구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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