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상담기록을 다시 읽어본 첫 실험
AI로 상담기록을 다시 읽어본 첫 실험은 기록을 빠르게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럴듯한 해석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여주었습니다. 상담기록을 AI와 함께 다시 볼 때 필요한 확인 절차를 살펴봅니다.
처음부터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래된 상담기록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쓴 상담기록을 읽으면서 오글거림을 느끼기도 하고 어설픔에 웃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전에 했던 상담은 묘하게 낯설어진다.
분명 내가 만났던 내담자이고, 내가 남긴 상담기록인데도 다시 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다.
동시에 다시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록은 길었고, 회기는 많았고, 내가 쓴 문장 안에는 이미 기록하였을 때의 나의 관점이 깊게 들어가 있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에게 내 상담기록을 읽혀보면 어떨까. AI는 내 기록의 어떤 부분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이 사례를 볼 수 있을까.
내가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표현이나 흐름을 짚어줄 수 있을까.
상담사례 분석이나 사례개념화처럼 거창한 결과를 기대했다기보다는, 내가 쓴 기록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물론 실제 상담기록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자료다.
그래서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을 덜어내고, 가능한 한 내담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정리한 뒤 AI에게 읽혀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과정도 충분히 정교하지는 않았다.
10년쯤은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그저 오래된 상담기록을 다시 읽기 위한 하나의 어설픈 시도였다.
AI에게 상담기록을 읽혀 본 첫 실험
AI는 상담기록을 읽고 전체 흐름을 요약했다.
내담자가 반복해서 보이는 주제처럼 보이는 것들을 말했고, 상담자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지도 정리해주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떤 문장은 내가 그냥 지나쳤던 표현을 다시 보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 회기 안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던 말이, 여러 회기를 함께 놓고 보니 반복되는 흐름처럼 보일 수 있었다.
상담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넘겼던 반응도 다시 보면 하나의 패턴처럼 보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정확한 분석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록을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단서가 되기는 했다.
상담기록은 이미 남아 있는 자료인데, 다시 읽지 않으면 그냥 저장된 문서로만 남는다.
그런데 AI가 그 기록을 다른 방식으로 정리해주자, 내가 쓴 기록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상담기록 정리나 슈퍼비전 준비를 할 때도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답변을 다시 확인해야 했던 이유
AI의 말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문장은 매끄러웠고, 설명은 그럴듯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있어서, 그 말이 실제 상담기록에서 충분히 나온 것인지, 아니면 AI가 기록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로 묶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쓴 AI는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AI였다.
상담에서 그럴듯함은 늘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그럴듯한 말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불안을 감추려 하거나 포장하려 한다.
상담기록을 읽다 보면 어떤 장면은 유난히 강하게 남는다.
내담자의 말이 인상적이었거나, 상담자의 개입이 뚜렷했거나, 감정의 변화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담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강하게 보이는 장면이 전체를 설명해버리면, 작고 애매한 장면들은 쉽게 사라진다.
AI의 답변에서도 비슷한 위험이 느껴졌다.
몇몇 장면이 중심이 되고, 그 장면들을 기준으로 전체 사례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다.
분명 내가 제공한 상담기록 내용에서 시작한 것 같기는 한데, 어느 순간부터 그럴듯한 설명과 그러한 설명이 마치 사실인양, 그 다음을 추론하고 다시 그에 대한 설명을 한다.
내담자의 변화도, 상담자의 반응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데 너무 확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또 하나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근거의 문제였다.
AI가 “이 사례에서는 이런 흐름이 보인다”고 말할 때, 나는 다시 묻게 되었다.
그 말은 상담기록의 어디에서 나온 걸까.
어떤 회기의 어떤 표현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걸까.
그 표현은 정말 반복된 것일까, 아니면 한두 장면이 크게 보인 걸까.
내가 쓴 기록의 관점을 그대로 따라간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AI의 시선을 사례 다시보기에 활용하는 방법
그런데 막상 상담기록을 읽혀보고 나니,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AI가 말한 내용을 내가 다시 확인할 수 있는가.
아무리 흥미로운 설명이라도, 상담자가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또한 눈에 안보였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AI가 펼쳐내는 수많은 상담이론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례를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상담사례 분석이나 사례개념화, 슈퍼비전 준비에 활용하려면 더 그렇다.
그럴듯한 설명보다 중요한 건, 그 설명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만약 AI의 답변이 전혀 생뚱 맞았다면 거기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답변 안에는 분명 다시 볼 만한 단서가 있었다.
다만 그 단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믿기엔 위험했고, 버리기엔 아까웠다.
처음 질문은 이것에 가까웠다.
AI가 상담사례를 분석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통해 더 중요한 질문이 생겼다.
AI가 제안한 가능성을 내가 어떻게 다시 확인할 수 있을까.
상담기록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요약을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고 싶다면, 그 발견은 다시 기록을 읽어야만 했다.
내가 보는 관점의 바깥을 조금이라도 보려면,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근거를 찾아야 했다.
이 초기의 실험은 아직 아무런 형태도 갖추지 못한 시도였다.
그때는 방법을 몰랐고, 기준도 없었고,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AI의 답변을 그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지만, AI가 던져주는 낯선 시선을 완전히 버릴 필요도 없다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나처럼 상담기록을 다시 읽는 시도를 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