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 놓고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아이, 놀이로 마음을 보여주는 이유
숨겨 놓고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놀이는 단순한 장난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는 직접 말하기 어려운 마음을 놀이 속 단서로 보여주며 부모가 따라와 주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숨겨 놓고 부모를 부를 때가 있습니다.
장난감을 이불 밑에 넣어 두고 “찾아봐”라고 하거나, 그림을 반쯤 가려 놓고 무슨 그림인지 맞혀 보라고 합니다.
힌트를 주는 듯하다가도 부모가 바로 알아맞히지 못하면 짜증을 냅니다.
반대로 너무 쉽게 맞히면 재미없다는 듯 다시 숨깁니다.
부모에게는 이런 놀이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쁜 시간에 계속 맞혀 보라고 하거나, 정답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것도 몰라?”라고 하면 답답함이 올라옵니다.
아이가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숨기는 것은 물건만이 아닐 때
아이는 자기 마음을 그대로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놀이 속에 마음을 넣어 둡니다.
직접 “나를 봐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줘”라고 말하는 대신, 무언가를 숨기고 찾게 만듭니다.
숨기지만 완전히 감추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찾을 수 있을 만큼의 단서를 남기고, 상대가 그 단서를 따라와 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의 놀이에 남겨진 작은 단서
부모가 자기 마음의 흔적을 따라오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포기하지는 않는지, 엉뚱한 표현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보려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정답보다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기
물론 부모가 매번 아이의 놀이에 완벽하게 맞춰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의 말은 불분명하고, 규칙은 자주 바뀌고, 조금 전까지 중요해 보이던 것이 금방 다른 것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부모는 지치고,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말보다 먼저 놀이가 있습니다.
그림, 블록, 상상 속 캐릭터, 이상한 소리, 비밀스러운 규칙이 아이가 자기 마음을 내보이는 통로가 됩니다.
아이가 만든 세계는 어른이 보기에는 산만하고 엉뚱해 보여도, 그 안에서는 아이 나름의 질서가 움직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그 세계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라는 태도입니다.
“이게 정답이 맞아?”보다
“이 부분이 네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라고 물어보는 말이 아이에게 더 안전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다시 설명하거나, 조금 더 보여주려 한다면 그 순간 아이는 자기 마음이 완전히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숨기기는 거절이 아니라 초대일 때가 있습니다.
다만 그 초대는 아주 조심스럽고, 때로는 짜증과 장난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그 포장을 모두 벗겨내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아이가 남겨 둔 작은 단서 앞에 잠시 머물러 주는 것, 모르는 채로도 궁금해해 주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는 “내 마음을 누군가가 찾아주고 있다”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